김추신
金秋信190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관련 사건
- · 함흥적색노동조합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08년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府) 약죽동(若竹洞)에서 태어났다. 근우회(槿友會), 도쿄조선노동총동맹(東京朝鮮勞動總同盟)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에 사회주의 이념의 보급과 여성운동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朝鮮女子苦學生相助會)의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듬해에는 황신덕(黃信德)·정칠성(丁七星)·심은숙(沈恩淑) 등과 함께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순회 강연을 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9년 도쿄조선노동총동맹의 부인부장(婦人部長)으로 활동하였고,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로 해소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30년 1월 김두용(金斗鎔) 등과 「의회 해산과 선거투쟁 방침서」라는 한글 문건을 제작 배포했다는 이유로 도쿄지방재판소에 송치되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조선으로 돌아와 1931년 1월 유치원 보모로 신분을 감추고 함흥의 편창제사공장(片倉製絲工場) 여공들의 시위를 지도한 다음 서울 익선동으로 피신했다가 붙잡혀 함흥경찰서로 압송되었다. 풀려난 후에도 함남 이원(利原)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흥남비료공장을 중심으로 적색노동조합 재건 운동을 전개하여, 1931년 10월 10일 오후 2시 30분 다시 일제 경찰에 가택수색을 당하고 장시원(張時源) 등과 함흥경찰서로 이송되어 유치장에서 2개월 여 동안 고초를 겪고 12월 말 풀려났다. 이후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일본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셋방살이로 살아가는 주민들을 규합하여 각종 요금 인하·면세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일본공산당 기관지 구독자 확보를 위해 애쓰던 중 1935년 5월 경찰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