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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

朴正淳

1914. 12. 4 ~ 197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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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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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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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14년 12월 4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청양면(靑陽面) 읍내리(邑內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박정순(朴正順)을 썼다. 1932년 충남 예산 지역에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예산공립농업학교(禮山公立農業學校)에 입학한 후 비밀 독서회에 가입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했으며 문맹퇴치 운동 등에 나섰다. 1932년 5월 독서회를 좌익협의회(左翼協議會)로 확대 조직할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7월 좌익협의회 회원 김규환(金奎煥)·오일규(吳日圭)가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당하면서 활동이 위축되어 해체되었다. 1932년 9월 강봉주(姜鳳柱) 등과 함께 조직을 재건하여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禮山共産主義學生同盟)을 결성하였다. 이 동맹은 “우리는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연구하고 투쟁한다”라는 강령 하에 연구부·선전부를 두고 항일투쟁의 이론 연구와 선전을 통해 조직을 확대 강화해 나갔다. 그는 이 동맹의 선전부를 맡아 선전 및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해 11월 26일 예산군 장터에서 ‘만경좌(萬鏡座)’라는 극단이 ‘동방의 빛’이라는 제목의 친일적 연극을 공연하자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을 중심으로 이 연극의 공연에 반대하는 투쟁에 나섰다. 이 연극은 “만주사변에서 조선인들이 마적으로부터 극도의 박해를 받고 살해될 즈음에 일본군에 의해 구원,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한국인의 친일 의식을 조장하고 민족 의식을 말살한다며 규탄하였다. 그리고 서용하(徐龍河)·김현창金(顯昶) 등의 동맹 회원들과 함께 관람 거부와 공연 저지투쟁을 펼쳤다. 이 일로 인하여 1932년 12월 1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3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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