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金泰熙1877. 10. 18 ~ 1936. 6.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당
- · 청주청년회
- · 신간회 청주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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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7년 10월 18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동주내면(東州內面) 탑동리(塔洞里, 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서 김양수(金亮秀)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가승인 『경주김씨상촌공파판관공세보(慶州金氏桑村公派判官公世譜)』(1983)에는 이름이 인환(仁煥)으로 되어 있고, 자는 태희(泰熙), 기득(奇得)으로 기재되어 있다. 호는 일석(一石)이다. 청주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閔老雅, F. S. Miller)를 만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민노아가 1904년 청주읍교회를 건립 활동하던 때부터 교유하였다. 같은 해에 세운 광남학교(廣南學校)는 청주 지역 근대 교육의 효시가 되었는데, 1908년 청남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학감으로 학교 운영을 책임졌다. 1909년 대동청년당 가입을 시작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연통제가 시행되면서 충청북도 독판부 참사로 임명되었다. 이어 1919년 9월 25일 조선국민회 충북도회 회장이 되었고, 10월 2일 평양에서 열린 전선(全鮮) 각도회(各道會) 대표 24명이 모인 대한국민총회(大韓國民總會)에서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6월 19일 청주청년회 창립총회에서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조선청년회연합회 기성회 발기 때에는 청주청년회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이듬해 10월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회장에 피선되었다. 1921년 당시 청주여자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사용되던 망선루(望仙樓)가 헐릴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매입, 보존하였으며, 1924년에는 망선루를 청주읍교회 구내로 이전하여 청남학교 교사로 활용하는 등 민족문화 보존 운동에도 기여하였다. 1923년 3월 29일에는 민립대학 발기인 총회에 청주군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7년 12월 22일 개최된 신간회 청주지회 설립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 진행 사회를 맡았고 간사로 선임되었는데, 신영우와 함께 본부 대회 출석 대표로도 선임되었다. 1928년 3월 17일 망선루에서 열린 청주지회 춘기강연회에서 「진화냐 퇴화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가 청주경찰서에 끌려가 며칠 동안 구금당하였다. 1931년 청주지회가 해소될 때까지 지회장을 맡아 민족차별교육 등 현안은 물론 만주 동포 옹호 문제와 원산총파업을 성원하는 등 청주 지역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1933년 청주를 떠나 대전 신탄진으로 이주하였는데, 학교 운영과 민족운동 문제를 둘러싸고 민노아와 빚은 갈등이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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