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엽
魯光燁1898. 3. 3 ~ 1987. 4.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장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8년 3월 3일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대구면(大救面) 송탄리(松灘里)에서 태어났다.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 독립운동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장연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일제 경찰의 검거를 피해 중국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 만주독립군(滿洲獨立軍)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만주 펑톈성(奉天省) 환런현(桓仁縣) 횡도천(橫道川)에 본부를 둔 독립군 제3중대에 소속되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4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참의부)에서 활동하였다. 1924년부터 1925년 사이에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평북 초산(楚山), 벽룡(壁龍)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차지련(車芝輦)과 함께 2회에 걸쳐서 무역상 최재화(崔載華) 등에게서 약 3,700엔을 조달하였다. 군자금 조달 과정에서 일제 경찰과 여러 차례 교전을 하였다. 1926년에는 장연군 부호에게서 군자금을 획득하고, 장연군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12월 군자금 확보를 위해 장연군 목감면(牧甘面) 무산리(茂山里)에 사는 부호의 집에 들어갔지만 권총 고장으로 실패하였다. 그 결과 장연경찰서에 감금되었으나 곧 탈옥하였다. 부호의 이름은 곽환(郭環)이라는 기록과 곽호(郭鎬)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 재검거가 되는 사실과 관련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현상금을 노린 친척 김화조의 고발로 1927년 황해 해주(海州) 용담포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1927년 3월, 하얼빈(哈爾賓) 방면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장연경찰서로 호송되었으며, 이후 해주지방법원 검사국(檢査局)으로 이송되었다는 것이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풀러난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평양경찰서에서 1933년 1월 장연읍 조규엽(趙奎燁)의 돈 3천원을 가지고 만주로 건너간 것으로 보고, 수배중이라는 신문 기사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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