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구
南柄九1888. 3. 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한족노동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88년 3월 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칠성리(七星里)에서 태어났다. 국내에서 행적과 만주 이주 시점 등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활동 당시 남일동(南一東)·남훈(南薰)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뒤에는 펑톈성(奉天省) 하이룽현(海龍縣) 일대에 거주하면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1922년 8월말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는 남만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통합하여 한인자치와 무장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였다. 총 8개 단체와 9개의 회(會)가 모여 결성된 단체로, 조직체계에서는 행정과 군사로 나뉘어 있고 행정체계는 중앙기구와 지방조직으로 나뉘어졌다. 중앙기관에는 법무부·군사부·학무부·선전부 등을 설치하였다. 이때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학무부 비서과원(秘書課員)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무렵 싱징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서 대한통의부 제2회 중앙총회가 개최되어 행정보고, 법령공포 등 사항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군사부 비서과원으로 임명되었다. 1924년 11월 무렵 지린성(吉林省) 판스현(磐石縣)을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추방되어 돌아온 김응섭(金應燮) 등 창조파 계열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이 조직되었다. 중앙기관으로는 중앙의사위원회와 당무집행위원회를 두었다. 또한 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당원들을 기반으로 지방기관을 조직하였고 중앙과 지방에서는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당약 개정과 법규 개정 등을 논의하였다. 일찍이 한족노동당에 가입하였고 1926년에는 중앙기관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1월 푸쑨(撫順)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자 후원회를 발기하였고, 각처에 발기문을 배포하였다. 당시 김성(金成)·김철(金鐵)·이건(李健) 외 90명과 같이 참가하였다. 1927년 5월 한족노동당 정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정기대회에 출석하여 한족노동당의 대내외 문제, 운동방침, 노동·청년운동, 여성운동 등 당내 제반사항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회를 조직하고자 하였고, 이광민(李光民)·이철(李哲)·이상경(李相慶)등을 중앙집행위원으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중국 관헌에게 발각되어 1927년 5월 14일에 붙잡혔다. 이후 톄링현(鐵嶺縣)에 위치한 일본영사관으로 압송되었다. 그 해 8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신의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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