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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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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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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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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대한독립군단)
  • · 신민부
  • · 부여족통일회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흥륭진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본적은 함경남도이다. 하지만 상세한 출생일자와 출신지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8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남성극(南星極)·남참봉(南參奉) 등을 사용하였다. 1920년대 만주에서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신민부(新民府) 등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가 이범윤(李範允)의 사위로 1908년 이범윤 의병부대에 속하여 부대의 행동시찰을 위해 이만에서 블라디보스토크·추풍(秋豊) 지방 등으로 근거지를 옮겨 다녔다. 혈성단(血誠團)·신민단(新民團)·대진단(大震團) 등 9개 단체의 일부 대표 인사들이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재조직하기 위해 이범윤을 임시 단장으로 하여 통합 취지서를 발표하던 1922년 8월에는 해당 단체의 심사위원부 부원이 되어 대표자의 자격을 심사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립 자체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던 1923년 국민대표회의 당시 임시정부 유지에 대한 의견을 견지하였다. 1925년 3월 10일 중국 푸젠성(福建省) 용안현(永安縣) 영고탑에서 대한독립군단 대표 김좌진(金佐鎭)·최호(崔灝)·박두희(朴斗熙) 등과 재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대표 김혁(金爀)·정신(鄭信) 등이 개최한 ‘부여족통일회의’에 참석하여 신민부 창설을 논의하였다. 수일간의 논의를 거쳐 1925년 3월 22일에는 지린성(吉林省) 무링현(穆稜縣)에서 신민부를 수립하기로 선포하고, 선포문을 작성하여 서명하였다. 이후 신민부에서는 김진연(金震淵)·김규현(金奎鉉) 등과 함께 참의원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신민부 설치 후 북만주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제는 중국 경찰과 합동하여 신민부를 와해시키기 위해 1927년 3월 신민부의 근거지가 있던 석두하자(石頭河子) 흥륭진(興隆鎭)을 습격하였다. 이때 박경순(朴敬淳)·한경춘(韓慶春)·남중희(南重熙) 등 11명과 함께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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