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正華
正華미상 ~ 1920
관련 단체
- · 조선독립기성회
- · 대한국민회
- · 간북남북총판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3
- · 1독립선언 축하 민중대회
- · 삼도구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출생연도와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나정화(羅正化)·(羅正和)와 남별성(南別星)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0년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하다 전사하였다. 1919년 3월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문병호(文秉浩)를 만났다. 문병호와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20일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의 일원으로서 황병길(黃丙吉)·노종환(盧宗煥) 등과 함께 훈춘 지방 ‘3·1독립선언 축하 민중대회’를 주도하였다. 이는 룽징(龍井) 지방의 ‘조선독립축하회(朝鮮獨立祝賀會)’를 이은 것이었다. ‘3·1독립선언 축하 민중대회’는 오전 8시에 시작되었다. 훈춘 시내 동문과 서문 사이에서 약 5,000명 이상의 민중들이 참여하였다. 황병길 등 주도자 3명의 연설을 듣고 해산하였다. 1919년 4월 훈춘현 춘화향 대육도구(大六道溝)에서 채덕승(蔡德勝)·최경천(崔慶天)·오종범(吳宗範)과 함께 무력을 통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포수단을 조직하였다. 이를 위해 채덕승과 더불어 단원 60여 명을 모집한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이동휘(李東輝)와 협의 후 단원을 러시아령 우수리스크에 이동시켰다. 5~6월경에는 룽징촌에 감독자를 두고, 캐나다 장로파의 기독교 신자를 중견(中堅) 회원으로 하여 육도구(六道溝)·동구(東溝)·훈춘 평야 및 황구(荒溝) 부근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서 통신반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19일 연해주(沿海州)에 거주하는 귀화 한국인으로부터 총기를 구입하기 위해 대육도구(大六道溝) 최경천(崔景天) 방에서 이명순(李明淳)·박영호(朴永浩) 등과 함께 협의하였다. 협의 이후 9월 23일 이명순·박영호 2명과 더불어 15만 루블을 지참하고 러시아 니콜리스크 방면으로 가서 총기를 매입하였다. 10월 20일에는 이명순 등 10여 명과 함께 훈춘 둥닝현(東寧縣) 삼차구(三岔口)에서 엽총 80정과 탄약 60발 등을 초모정자(草帽頂子)로 운반하여 서간도 방면의 동지에게 이송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중국관원의 검문이 엄중해서 무기를 휴대하고 흩어져서 이동하였다. 1920년 10월 29일부터는 간북북부총판부(間北北部總辦部) 참사(參事)가 되었다. 이후 훈춘현·둥닝현·왕칭현(汪淸縣)·무링(穆陵) 등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