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孝俊
孝俊1891 ~ 1921. 10.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 화하동(化下洞)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9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30세 되던 해 집에서 출가하여 1월~(음)3월에 걸쳐 의주군에서 최천선(崔天善)과 재목상으로 동업하게 되었다. 최천선과 동업하던 중 최천선의 동생이라고 하는 최시흥(崔時興)을 만났다. 최시흥의 설득을 통해 최시흥의 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최시흥은 본래 천마산대(天馬山隊)로 알려진 부대의 수장으로 1919년 만세운동 이후부터 최지풍(崔芝豊)·박응백(朴應伯) 외 수십 명과 함께 평북 의주·귀성(龜城)·삭주(朔州) 일대에 걸쳐 있는 천마산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조직을 구성하였다. 최시흥의 조직은 군대를 조련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최시흥 휘하에서 천마산 일대를 중심으로 일제 시설 습격과 일경·밀정 등을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음)5월 23일 밤 10시에는 최시흥 등과 함께 의주군 월화면 화하동에서 일제의 밀정으로 알려진 최학정(崔學廷)의 집을 습격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음)6월 말에는 최시흥의 부관 최지풍(崔志豐)과 수십 명의 천마산대 부대원과 함께 의주군 옥상면(玉尙面)의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시설에 방화하고 전투를 벌여 일제 경찰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처럼 천마산대 일원으로 무장투쟁에 참여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4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강도·살인·방화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21년 5월 30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1921년 10월 1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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