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
金熙暎1893. 1. 8 ~ 1975. 1.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군산철도노동회
- · 갑자연구회(민중운동동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민중운동사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93년 1월 8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앙성면(仰城面) 용포리(龍浦里)에서 태어났다. 김규완(金奎完)·김탁(金坼) 등의 이명을 사용했으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전희영(金田熙暎)으로 고쳤다. 1920년대 중반 활동 당시 전라북도 군산부(群山府) 영정(榮町, 현 군산시 중앙동)에 거주하였다. 1898년부터 1906년까지 충북 제천에서 한학을 배웠다. 1907년 3월 1일 청풍영명학교에 입학하여 근대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1909년 4월 1일 청주 사립 보성학교에 들어가 중등교육을 받고, 1911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18년 2월 21일 청주경찰서 순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을 밀탐하여 수시로 일본 경찰에게 보고하는 한인 순사의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절감한 후 1919년 5월 과감히 직업을 버리고 충청북도 증원군에 소재한 광산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21년 조선일보 군산지국 지국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같은 기간 군산철도노동회(群山鐵道勞動會) 조직에 참여하고 노동부장으로서 활동하였다. 1924년 초에도 군산 일대에서 형평청년회(衡平靑年會), 물산장려회(物産獎勵會), 인력거조합(人力車組合), 양화직공조합(洋靴職工組合) 등을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과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 해 4월 18일 전국의 노동농민 운동가 450명이 모여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발기회에 군산지역 미선조합(米選組合)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발기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시기 1920년대 국내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한 서울파 사회주의 그룹에 참여하였다. 군산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벌이던 중 노동운동을 매개로 서울파 그룹의 사회운동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합류하였다. 1920년대는 산업별 노동운동 이전 단계인 지역별 노동운동이 중심이 되었고, 마침 등장한 사회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상호 협력하였다. 1924년 4월 23일에는 서울파 리더 김사국(金思國), 전북 김제의 지역운동가인 조기승(趙起勝) 등과 함께 「조선사회운동자동맹발기취지서(朝鮮社會運動者同盟發起趣旨書)」를 작성하였다. 조선사회운동자동맹은 서울파 사회주의 그룹이 국내 사회운동 방향 지도와 독립운동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조직하려 한 전국적인 연합체였다. 이처럼 군산지역 노동운동을 통해 축적한 역량과 운동노선을 바탕으로 서울파 사회주의 그룹 중심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와 동시에 1924년 1월 이봉길(李奉吉)·장일환(張日煥)·조용관(趙容寬) 등과 함께 공산주의를 통한 독립운동 전개를 목적으로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하였다. 그 해 9월 25일 익산군(益山郡) 익산면(益山面)에 소재한 동아일보 지국에서 개최된 월례회의에서 단체의 명칭을 민중운동자동맹(民衆運動者同盟)으로 개칭하였다. 전북·논산·대전·홍성 지역 사회운동가들이 참여한 민중운동자동맹은 서울파 사회주의 그룹의 도(道) 지역 단위 사상단체였다. 이는 서울의 서울파 그룹과 예하 비밀 공산당인 고려공산동맹(高麗共産同盟)과 연계하여 전북 지역의 운동단체를 지도하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서울파 중심에서 활동하던 김희영은 이 같은 지역 운동간의 연계와 사회주의 운동노선 확대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보였다. 민중운동자동맹은 1924년 12월 7일 익산면에 위치한 천도교구당에서 회원과 다수 인사들이 참여한 월례회를 열어, 민중운동자동맹의 활동상을 선전하고 운동이론의 심화를 위한 기관지 발간을 결의하였다. 이때 김병숙(金炳璹)·장일환·이정윤(李廷允)과 함께 기관지 『민중운동(民衆運動)』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1925년 1월 7일 서울 공평동(公平洞) 대동인쇄사(大東印刷社)에서 민중운동자동맹 회원들이 작성한 논문들을 모아 『민중운동』 창간호의 인쇄를 위한 표본이 제작되었다. 이때 편집위원으로 군산의 사무소에서 이를 검수하고 교정하는 도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는 ‘민중운동사(民衆運動社) 사건’이 일어났다. 재판에서 자신의 행동이 무죄라고 주장하였고, 1925년 4월 8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일제 검사가 즉각 항소하여, 그 해 12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지만 1926년 3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형무소에서 갖은 옥고를 치른 후 9월 2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