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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96. 7. 7 ~ 194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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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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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扶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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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7월 7일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부안면(扶安面) 동중리(東中里)에서 태어났다. 당시 판결문에는 본적이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김제면(金堤面) 교동리(校洞里)로 달리 기록되어 있다. 이명은 김환(金煥)·신권(辛權)·김재철(金載哲)을 사용하였다. 활동 당시 김제면에서 미곡상(米穀商)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을 목적으로 동지인 부안군의 신헌(辛憲), 정읍군(井邑郡)의 이헌(李憲), 김제면의 조기담(趙紀淡)과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애국금 모집원으로 고려민(高麗民)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던 이의(李儀)와 공모하여 국내 자산가들로부터 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 모집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이후 1920년 (음)10월 7일 신헌·조기담·송봉렬(宋奉烈)과 함께 국권회복을 기도하고, 각기 김제와 부안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운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11월 27일경 김제면 교동리 송봉렬의 집에서 같은 김제면 출신으로 지역 사정에 정통하고 자산가 친구가 많았던 의형제인 조기담에게 이의를 소개했고, 조기담은 이의와 함께 관내 자산가의 집을 안내하도록 주선하였다. 또한 이의에게 김제 지역의 자산가를 알려주었다. 이의와 함께 부안으로 가서 그 지역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행동하였고, 신헌에게도 이의를 소개하였다. 1920년 11월 29일 오후 8시경 조기담과 이의는 김제군 김제면 옥산리 나갑순(羅甲淳)의 집에서 나갑순과 같은 면 교동리에 사는 조재돈(趙在敦)을 만났다. 이에 조기담은 이의를 임시정부원이라 소개하였고, 이의 자신은 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부터 전라북도 군자금 모집위원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을 말하고 군자금 제공을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이듬해 (음)1월 30일까지 기한으로 조재돈은 200원을, 나갑순은 50원을 지불하겠다는 약속 증서를 교부하였고, 당일 조재돈으로부터 10원을 전달받았다. 이 외에도 황해 황주군(黃州郡)의 김선복(金善福), 경남 거창군(居昌郡)의 임양재(任良宰) 등과도 연락을 취하면서 김제, 무주(茂朱), 정읍, 목포(木浦) 등 각지에서 동지를 구하고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내는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1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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