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관
高世寬185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용성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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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57년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하무산면(下茂山面) 영통동(靈通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5일에 일어난 경성군(鏡城郡) 만세 시위는 천도교인들이 추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함북 청진(淸津)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천도교 경성대교구의 교구장 김동학(金東學, 또는 金斗學)·공선원(共宣員) 남정하(南正夏)·교사 박용한(朴庸漢)·금융원 신창화(申昌和)·전도사 이종선(李鍾璇) 등이 경성군 용성면(龍城面) 수성동(輸城洞)에 자리한 천도교 경성대교구 교구실에 모였다. 이들은 3월 15일 경성 군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기로 계획하였다. 남정하·박용한은 박영하(朴永河)의 집에서독립선언서 403매를 등사하였다. 그러나 3월 14일 밤 경찰이 박영하의 집을 급습하여 태극기·독립선언서·『독립신문』을 모두 압수하고 말았다. 3월 15일 아침에는 헌병과 수성헌병대·나남기병대(羅南騎兵隊)에 주동 인물 14명이 체포당하였다. 3월 15일 체포를 면한 천도교인과 함께 경성대교구실에 모였고, 권병환(權秉煥)·이종선 등과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천도교구실을 나와 수성동으로 시위 행진하자 이를 본 군중도 합류하였다. 만세 시위에 동참한 시위대 105명과 함께 검거되었는데, 단일 만세 시위로 현장에서 체포된 시위대의 인원이 가장 많은 경우였으며 당시 62세의 고령임에도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7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불복 상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징역 6개월의 판결을 받았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14일 기각당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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