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상
金弼相1925. 1. 24 ~ 1980. 6.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단파방송 밀청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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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925년 1월 24일 서울 출신이다. 본관은 낙안(樂安)이다. 1933년 4월 서울 방산공립심상소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3월 17일 졸업 후, 4월 서울 경성고등예비학교(현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0년 3월 졸업하였다. 3월 29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4월 10일 슌다이상업학교(駿臺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1940년 4월경 도쿄 시내 스루가다이(駿河臺) 부근의 한 서점에서 『초보의 라디오 조립(初步ノラヂオノ組立)』이라는 책을 사서 기본 지식을 얻었고 점차 단파무전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전문서적 『고급 전기축음기 조립 및 수리지식』과 월간잡지 『초보의 라디오』, 『무선과 실험』 등을 구독하여 지식을 쌓았다. 1942년 3월에 미타(三田)무선연구소 판매점에서 단파수신기 부품을 구입하여 제작하려다가 실패하였다. 같은 해 9월 1일 3학년 재학 중 집안 사정으로 자퇴하고서 귀국하였다. 1942년 11월 20일경 서울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保修課) 기술원 견습생으로 취직하여 방송무선전화 수신기의 수리와 검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였다. 동료 기술원 박훈상(朴塤祥)과 김재룡(金再龍)에게 수신 장치 제작법과 배선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여 12월 24일 배선도를 받았고, 25일과 26일 양일 간 집에서 부속품들을 조립하였고 1943년 1월 20일 마침내 수신에 성공하였다. 그날 밤부터 2월 6일까지 집에서 혼자 혹은 소학교 동창 조국환·장영목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송출되는 ‘미국의 소리(VOA)’ 한국어 방송을 통해 태평양전쟁 내용 등을 청취하였다. 이에 “일본의 전세가 불리하여 패전하게 될 것이며, 조선은 독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변에 알렸다. 나아가 박훈상에게 단파수신기 제작법을 가르쳐 주고 단파방송 밀청 방법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1942년 12월부터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밀청사건’이 발생하면서 관련자 350여 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갔다. 1943년 3월 초 서울 훈정동에서 19세의 나이로 붙잡혔고 자택에 있던 수신기 부품들도 증거로 압수되었다. 경기도 경찰부에 끌려가 고문과 취조를 받은 뒤 경찰부 지하유치장 동3호 감방에 수감되었다가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7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었고 무선전신법, 방송용 사설무선전화규칙 위반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8월 5일 병보석을 신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고, 12일 항고를 했으나 12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선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에 풀려났다. 1945년 8·15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사령부 통신근무대에서 일하다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고, 한국문화방송MBC에서 시설부장으로 재직하였다. 1980년 6월 23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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