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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복

金泰福

1886 ~ 193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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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태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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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 · 의용단 평양지단
  • · 기림리예수교청년회
  • · 조선물산장려회
  • · 근우회 평양지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은후리(銀後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일제 대구지방검찰청 검사국이 남긴 자료에 의하면 34세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때를 전후로 여성들에 의한 독립운동 단체가 만들어져 독립군자금 모금과 독립운동가 후원에 앞장섰다. 1919년 6월 조직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조직 확대를 도모하여 각지에 지부를 두었고, 9월경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경성부 동대문 부인병원(婦人病院) 대표로 활동하다가 11월에 붙잡혔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12월 16일 불기소 처분을 받아 곧바로 풀려났다. 1920년부터 평양부 기홀병원(紀笏病院) 간호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기홀병원에 입원한 임시정부 특파원 김석황(金錫璜)의 권유로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였다. 의용단은 침체된 항일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임시정부와 국내 항일세력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발기인은 손정도(孫貞道)·김철(金撤)·김립(金立)·윤현진(尹顯振)·김구(金九)·김순애(金淳愛) 등이었다. 임원과 부서는 단장 1인, 부단장 1인, 총무 1인, 서무부 부장 1인과 부원 약간 명, 군무부 부장 1인과 부원 약간 명, 서재부 부장 1인과 부원 약간 명, 서기 약간 명으로 규정하였다. 본부는 상하이에 두고, 각도에는 지단, 부·군에는 분단을 두었다. 의용단 평양지단(平壤支團) 조직에 참여하여 동지 규합에 힘을 쓰는 한편, 거병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구한국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김동선(金東善)·김동순(金東淳) 등과 함께 붙잡혔다. 또한 1922년 1월 26일 기홀병원 수간호부에 재직하던 중 부인적십자단(婦人赤十字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아 강서경찰서에 붙잡혀 6일 동안 김오선(金悟善)과 같이 조사를 받았다. 1925년 6월 평남 대동군(大同郡) 임원면(林原面) 기림리(箕林里) 예수교청년회에서 등사 출판한 『기림리예수교통신』이라는 잡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회원 1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가 당일로 풀려났다. 같은 해 7월에는 평양 남산교회(南山敎會) 신도 등을 중심으로 수재구제회를 만들어 자선 사업에 앞장섰다. 이어 8월에는 조선물산장려회 정기총회에서 이영하(李泳夏)·박봉성(朴奉成)·변숙영(邊淑英) 등과 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임원진은 회장 조만식(曺晩植), 부회장 이덕환(李德煥), 서기 조명식(趙明植) 등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평양지역 여성운동을 견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1929년 7월 10일 근우회(槿友會) 평양지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조직부원으로 선임되었다. 약 10여 년 동안의 간호부 경력을 바탕으로 의생 면허를 취득하여 대동군 기림리에서 태성의원(泰成醫院)을 경영하였다. 평양고아원(平壤孤兒院) 등 사회단체와 자선기관을 설립·운영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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