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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

金忠國

1913. 8. 13 ~ 2001. 4.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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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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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김희성콤그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913년 8월 13일 서울 당인정(唐人町, 현 마포구 당인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춘국(金春國)·김중국(金中國)을 썼다. 최학기운동구점(崔學基運動具店)의 점원으로 일하였다. 김희성(金熙星) 콤그룹의 일원으로 적색노동조합 건설과 반제(反帝) 운동을 전개였다. 김희성그룹은 1930년대 중반 서울의 공장, 학교 등을 중심으로 노동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모아 적색노조건설과 반제운동을 전개해왔다. 1934년부터 종연방직(鍾淵紡織), 조선제사(朝鮮製絲), 경성전기회사 등에서 노동자, 학생 등에게 동맹파업을 선동하고 동지를 모으는 활동을 하였다. 당시 김희성의 지도를 받아 ‘콤그룹’의 재건을 위해 박인선(朴仁善) 등과 함께 서울의 공장, 가두 등지에서 동지를 모으는 등 적색노동조합 건설과 반제(反帝) 준비 공작을 진행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판결문에 따르면 1936년 9월 상순 서울 수은정(授恩町)(현재 종로구 묘동) 단성홀에서 김희성을 만나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의식의 양양을 도모하겠다는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1936년 12월 20일 무렵 이재유(李載裕)의 경성재건그룹과 비슷한 시기에 검거된 김희성 그룹은 이재유와는 달리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정통 노선’에 입각한 운동을 표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성그룹 사건’ 관련으로 100여 명이 검거되었는데, 종로경찰서는 1937년 5월 1일 그 가운데 21명을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 의견, 30여 명은 기소유예 의견을 부쳐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은 이 가운데 기소 11명, 기소유예 12명, 불기소 1명, 기소중지 1명으로 결정하였는데, 기소유예를 받아 석방될 때까지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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