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주
高錫柱186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군산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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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7년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 예수교회 부속 여학교 교사였다. 1919년 2월 28일 구암리 예수교회 부속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김병수(金秉洙)가 독립선언서 95장을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達三)에게 전달하였다. 박연세의 권유로 영명학교 교사 김수영(金洙榮)·이두열(李斗悅)과 함께 군산 장날인 3월 6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동지들을 모았다. 그 결과 구암리 예수병원 사무원 김준실·송기주(宋基周)·안경태(安敬泰)·양기준(梁基俊)·양성도(楊成道)·유한종(柳漢鍾)·이재근(李在根)·이준명·이진규(李眞圭), 임병율(林秉律), 군산의 예수교신자 김성은(金聖恩)·유희순(兪熙淳, 잡화상)과 개정면 구암리의 임종우(林鍾祐, 목수), 그리고 영명학교 학생 강규언(姜圭彦)·강인성(姜仁聲)·고준상(高俊相)·김영후(金永厚)·송기옥(宋基玉)·양기철(梁基哲)·오한길(吳漢吉)·유복섭(劉福燮)·이도준(李道俊)·전세종(田世鍾)·홍천경(洪天敬) 등이 만세 시위 계획에 뜻을 같이하였다. 영명학교 교사들과 함께 영명학교 학생들을 지도하여 3월 1일부터 4일까지 학교 지하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해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였다. 그런데 만세 시위 전날인 3월 5일 경찰들이 영명학교를 급습하고 영명학교 교사 김수영·박연세·이두열을 체포하였다. 이에 거사 일을 하루 앞당겨 3월 5일에 시위하기로 하였다. 영명학교와 여학교의 교사, 예수병원 사무원 등 140여 명이 영명학교 운동장에 모여 학생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동참한 두 학교 교사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선창한 후 시위대를 이루어 군산면으로 진출하였다. 경찰은 익산헌병대에 지원 요청하였고, 헌병들의 사격으로 만세 운동에 동참한 90여 명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상고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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