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성
金忠聖1874. 1. 24 ~ 1960. 9.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순천군 순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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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874년 1월 24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밀전면(密田面) 원천리(院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순천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순천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서울을 비롯한 7개 지역에서 3월 1일 만세시위가 있은 후 바로 다음 날인 3월 2일 은산면(殷山面)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4일에는 자산면(慈山面)에서, 6일에는 순천면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3월 2일 은산면에서는 은산면 천도교구실을 책임지고 있는 김기수(金基洙)가 주도하여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4일 자산면의 만세시위 역시 자산면 천도교구실을 책임지고 있는 김선오(金善五)가 주도하였다. 연이은 시위에 일본 헌병대는 순천 천도교구장인 최단봉(崔丹鳳)과 기독교 순천교회의 김점환(金占煥)·유응진(劉應鎭)·표영각(表永珏) 등을 불러 시위를 엄단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천면의 천도교인과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서둘러 또다시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6일 순천면에서는 야산당공원(野山唐公園)에 2,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갖고 시위 행진을 벌였으나 군대와 충돌하면서 해산당하였다. 이날 시위 해산 과정에서 같은 천도교인인 김계하(金啓河)·안일(安鎰)·이석영(李錫英)·이성환(李成煥)·차철수(車喆洙) 등과 함께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파리강화회의에서 세계의 약소국은 물론 민족의 자결과 평화를 위해 인도 정의를 추구하는 시대를 맞아 조선 민족도 전국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이에 동참한 것이 무슨 죄냐”고 항변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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