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기
金哲起1883. 11. 24 ~ 1946. 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양양군 물유리 물치시장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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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883년 11월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강현면(降峴面) 사교리(沙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강원도 양양군 물치시장에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5일과 6일 양양군 도천면(道川面)과 강현면 주민들이 연대하여 강현면 물유리(沕溜里)에 있는 물치시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만세시위는 도천면 중도문리(中道門里)에 사는 이석범(李錫範)이 동생인 이국범(李國範)과 아들 이능렬(李能烈)을 앞세워 추진하였다. 이석범은 3월 3일 고종 인산에 참석하여 서울의 만세시위를 목격한 뒤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3월 20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4월 5일 물유리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도천면에서는 김영경(金英經), 강현면에서는 장세환(張世煥)이 주민 동원을 맡았다. 음력으로 3월 3일 삼짇날인 4월 3일에는 중도문리에 있는 이종황(李鍾黃)의 집에서 친목계를 가장하여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이때 적은리(積銀里)에서 김환기(金桓起)와 함께 태극기를 만들며 주민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다. 4월 5일 강현면의 시위 군중은 물치장터에 모였고, 도천면의 시위 군중은 경찰주재소가 있는 대포리(大浦里)에 모였다. 물치장터로 모여든 시위대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오전 10시 무렵 물치장터에 있는 쌀가게 앞에서 독립선언식이 열렸다. 강현면 시위대는 물치장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대포리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도천면민과 합세하였다. 다음 날인 4월 6일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은 양양면(襄陽面)으로 향하였다. 1,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는 양양면 연창리(連昌里)에서 일본군과 맞닥뜨렸다. 시위대는 일본군의 저지선을 뚫고 면소재지로 들어가 경찰서로 몰려갔는데, 손양면(巽陽面)에서 온 시위 군중 약 3백여 명도 합세하였다. 4월 5일·6일 이틀간의 만세 시위 주도자에 대해 일제 경찰은 검거에 나섰고,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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