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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실

金昌實

1890. 8. 14 ~ 196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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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창실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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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창원군 창원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90년 8월 14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대산면(大山面, 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柳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읍(昌原邑)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창원지역의 애국 인사들은 창원읍 장날인 3월 23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비밀리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장날이 되어 창원읍 장내에 이른 아침부터 시위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오후 2시 20분경 주동인물들이 창원보통학교 교문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장 곳곳에 있던 6,000여 명은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만세시위가 고조되어 일본 헌병과 경찰관 주재소원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일제는 마산주재 중포병대대와 진해요항부 등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였고, 증원 병력이 도착하자 시위 군중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을 실시하여 31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체포를 면한 일부 인사들은 4월 2일 장날을 제2차 거사일로 정하고 주변 동리에 비밀 연락을 취하였다. 4월 2일 오후 3시 청년 주동인물 15명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위대열에 참여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날 상인들도 철시를 단행하고 호응하여 1차 시위보다 더 많은 7,000여 명의 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본 헌병은 응원 병력의 지원 아래 주도자를 검거하고 총검으로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두 번의 독립만세운동 결과 많은 사람이 구속되었는데, 그중 20여 명이 가혹한 고문 및 심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4월 2일 만세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되어, 1921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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