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후
金鍾厚185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홍원군 주익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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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1850년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희현면(希賢面) 조흥리(肇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90세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홍원의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28일 저녁 보성사(普成社) 사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상덕(安商悳)이 3월 1일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3월 3일 강인택은 홍원교구장 강남섭(姜南燮)을 만나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였다. 3월 7일 강남섭은 강인택, 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 홍원교구의 지도자들과 회합하여, 독립선언서를 함경남도 일대에 배부하는 문제와 주익면(州翼面, 이후 홍원읍)의 장날인 3월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3월 13일에는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豐山里) 강연상(姜鍊翔)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1,000장을 등사하는 한편, 조선독립 깃발을 만드는 등 만세시위 준비를 진행하였다. 강인택으로부터 만세시위 준비 상황을 전해 듣고 이에 뜻을 같이하여 3월 10일 희현면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6일 오전 11시 주익면 성동리(城東里) 장터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이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연설을 마치자,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 등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700여 명의 군중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홍원군청 앞으로 진출하였다. 군청 앞에서 더욱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부르자, 경찰은 시위 주도자들에게 붉은 잉크를 뿌리며, 행진을 제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8명의 시위자가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경찰은 옷에 붉은 잉크가 묻은 주도 인물들과 참여자 등 6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그 해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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