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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金在成

1897. 11. 3 ~ 198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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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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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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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11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남면(豊南面) 어담리(漁潭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19년 안동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안동면의 만세시위는 안동교회(安東敎會)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계와 송천동(松川洞)에 사는 송기식(宋基植) 등의 유림계에 의해 준비되었다. 안동교회 목사 김영옥(金泳玉), 장로 이중희(李重熙) 등은 3월 13일 안동면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일으키기로 준비하였다. 하지만 3월 12일 사전에 만세 계획이 발각되어 일부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다행히 검거를 피한 안동교회 장로 김병우(金炳宇) 등은 다음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였다.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은 김병우와 연락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협동학교(協東學校)·보문의숙(寶文義塾)·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도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안동면 장터에서는 낮 12시 경 기독교인 30여 명이 곡물전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을 벌였다. 유림들이 이끄는 시위대도 합류하여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과 군인에 의해 14명이 체포되었다. 오후 6시 기독교인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면서 점차 시위 군중이 늘어나 자정 무렵에는 2,500여 명이 되었다. 시위대는 군청·경찰서·법원 등의 관공서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였다. 경찰과 수비대가 발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에 독립을 허락하였다고 하면 5대 강국의 하나인 일본도 독립을 허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만세를 불렀다”고 항변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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