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麟鄕
金鄕1882. 1. 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횡성군 횡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2년 1월 9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정곡면(井谷面) 상안흥리(上安興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 신자였으며, 1919년 당시 서당 교사를 하며, 횡성군 일대에 「독립선언서」 를 전달하여, 횡성군의 만세시위를 촉발시켰다. 횡성군 만세시위는 천도교 횡성대교구가 주도적으로 나서며 조직적으로 준비하였다. 서울에서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장도훈(張道勳)을 횡성대교구를 대표하여 천도교 의사원(議事員)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이동구(李東求)에게 보냈다. 장도훈은 독립선언서 40장을 전달받고 태극기 20기를 구하여 돌아왔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는 3월 14일 횡성대교구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의 집에서 천도교 횡성대교구장 최종하(崔宗河)의 주도로 각지로 배포되었다. 이때 안경춘(安敬春)과 함께 정곡면을 비롯하여 갑천면(甲川面)과 둔내면(屯內面) 일원의 배포를 담당하였다. 또한 이때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12매 중 3매를 3월 21일 자신의 집에서 천도교인 이인영(李麟榮)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횡성군에서 천도교인들이 3월 27일 횡성면 장터 만세시위를 전개했으나 곧바로 붙잡혔다. 주도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된 상황에도 4월 1일 다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번에는 횡성감리교회(橫城監理敎會)에 다니는 정해경(鄭海景)과 횡성보통학교(橫城普通學校) 졸업생 중심으로 조직된 횡성청년회(橫城靑年會)의 윤태환(尹泰煥)이 힘을 보탰다. 천도교인들은 3월 27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천도교인 동원에 만전을 기하고 횡성면 소재지로 출입하는 도로에 천도교인을 배치하고 마을에서는 천도교인이 장꾼을 인솔하도록 하였다. 장터에서는 상점을 폐쇄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횡성군수 심상준(沈相俊)과 횡성면장 김석환(金錫煥)은 주요한 서류를 감추고 관리들에게 비상대기 하도록 명령을 내려 만일에 대비하였다. 아침부터 각지에서 시위대가 속속 모여들었다.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어 1,3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만세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몽둥이나 장작을 들고 군청 건물을 비롯한 관공서와 문을 닫지 않은 상점 등을 부수자 관리들이 도망갔다. 헌병인 고지마(小島)가 말을 타고 거리로 나타나자 시위대가 끌어내려 밟고 때렸다. 시위대가 헌병분견소로 몰려가자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5명이 죽었다.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혐의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자기의 행위는 정의, 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이므로 범죄가 아니다.”라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당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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