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徵魯
徵1894. 11. 11 ~ 1948. 1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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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4년 11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임하리(臨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성방(聖邦)이다. 1919년 안동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 안동면(安東面)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이상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이후 안동에서는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월 17일부터 23일까지가 절정기였다. 3월 21일에는 임하면·임동면(臨東面)·길안면(吉安面)·일직면(一直面)에서 동시다발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3월 18일 안동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자극받은 것이었다. 임하면 금소동(琴韶洞)에 살던 임찬일(林燦逸)은 3월 3일 고종 인산에 참여하고자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직접 보았다. 이후 독립선언서 10매를 갖고 귀향하던 길에 안동면에 사는 김원진(金源鎭)에게 독립선언서를 건네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동네 유림들과 3월 16일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길안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 추진이 여의치 않아 날짜를 다음 장날인 3월 21일로 연기하고, 길안면 장터가 아니라 금소동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임하면의 면사무소와 주재소가 있는 신덕리(新德里)로 향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1919년 3월 21일 저녁 100여 명의 금소동 주민들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신덕리로 행진하였다. 오후 9시경 300여 명의 시위대가 주재소로 밀고 들어가자 순사들이 뒷산으로 도망갔다. 시위대는 주재소의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호구조사부 등의 서류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다시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역시 파괴하였다. 안동수비대가 총격을 가하면서 그 자리에서 5명이 즉사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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