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언
金宗彦1887. 7. 10 ~ 1969. 9.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도초면소작인회(都草面小作人會)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무안 도초도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7년 7월 10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현 신안군 일부 편입) 도초면(都草面) 외남리(外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종원(金宗元)이 있다. 도초면 즉 도초도(都草島)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1925년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4년 10월 김용택(金容澤)의 주도로 소작 조건 유지와 개선을 위해 도초면소작인회(都草面小作人會)가 조직되었다. 도초면소작인회는 결성과 동시에 논(畓)의 소작료 4할, 밭(田)의 소작료 3할을 결의하였다. 도초면소작인회의 이 같은 활동 취지에 동의하여 회원이 되었다. 도초도를 비롯한 무안군 도서 지역은 어업보다 농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았으며, 대부분의 토지는 대지주들이 소유하며 높은 소작료를 받고 있었다. 이에 1923년 암태도(巖泰島) 소작쟁의를 비롯하여, 도초도와 전남 무안군 도서(島嶼) 지역 소작농들에 의해 소작쟁의가 확산되었다. 도초면소작인회의 소작료 인하 요구를 대다수 지주들이 거부하면서 쟁의가 길어지자, 소작인들은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며 저항하였다. 1925년 9월 지주들은 목포지청에 개입을 요청하였고, 10월 7일 집달리(執達吏)와 경찰이 도초도에 파견되어 미납 소작료 강제 압류를 시도하였다. 이에 1,000여 명에 달하는 소작인들이 시위를 하며 압류를 저지하였다. 다시 목포경찰서는 100여 명의 무장 경찰을 도초도에 출동시켜, 1925년 10월 11일 강제 압류를 시행하고 김용택 등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하였다. 4,500여 명의 소작인들은 무장 경찰에 저항하였다. 이때 선두에 나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모인 사람들에게 경찰의 행동을 저지할 것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도초면소작인회 간부를 비롯하여 소작 회원들과 함께 붙잡혀 목포경찰서를 거쳐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6년 3월 19일 광주지방법원 예심 재판에서 공판 회부가 결정되었다. 1926년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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