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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국

金日菊

1896. 7. 7 ~ 1976. 12. 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일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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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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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96년 7월 7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묘곡동(畝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24세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해면 시위는 기독교인과 유림들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기독교 교인인 김세영(金世榮)과 정규하(丁奎河)·남효직(南孝直) 등은 기독교인과 유림 등을 규합해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성내동시장(城內洞市場) 장날인 1919년 3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했다. 3월 18일 오후 1시 성내동시장은 장날을 맞이해 수천 명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정규하와 남효직 등이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한 후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자 이에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군중들과 함께 시장 곳곳을 행진한 후에는 영해경찰관주재소로 달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서류와 집기 등을 훼손하였다. 이어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우편소, 영해면사무소 등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는데, 영덕경찰서의 경찰을 비롯해서 대구와 포항 등지에서 지원 온 군인과 헌병들까지 합세해 무력을 행사하며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고 붙잡혀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 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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