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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金容煥

1899. 10. 10 ~ 1951. 2. 1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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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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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김해군 하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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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1899년 10월 10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하계면(下界面, 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進永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로 금본용환(金本容煥)으로 바꾸었다. 1919년 3월 김해군 하계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김해군 하계면 진영시장에서 열린 만세시위에서 하계면 면서기 김우현(金禹鉉), 장유면(長有面) 농민 김성도(金成濤), 하계면 반물상(反物商, 포목상) 김정태(金廷泰)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정태에게 자금을 주어 만세준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오도록 하고 하계면 여래리(余來里) 산속에서 태극기 등을 만들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대나무와 옥양목으로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천과 종이로 수십 장의 태극기를 만들었으며, 한지에 ‘독립만세’라고 붉게 쓴 전단도 만들었다. 1919년 3월 31일 오후 1시, 대형 태극기를 든 김성도를 앞세우고 동지들과 진영시장으로 갔다. 김우현이 천으로 만든 국기를 흔들고 있을 때 김정태와 함께 종이 태극기와 ‘독립만세’라고 쓴 전단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지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자 시장에 모여 있던 200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자 헌병들이 출동해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 사건으로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4월 27일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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