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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順

金順

1897. 8.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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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龍順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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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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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관련 사건

  • · 부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897년 8월 13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남산리(南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8일 강화면내 시장에서 만세를 부른다는 내용이 담긴 ‘강화인민에게’와 ‘독립가’ 등을 보고 만세운동에 참가하고자 하였다. 그 날 오후 2시경 시장에서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유봉진(劉鳳鎭)의 지휘로 시위대는 군청에 진입하였다. 군수 이봉종에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쳐라. 만약 응하지 않으면 군청 안으로 침입하여 파괴하겠다”라고 군중들과 함께 위협하여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이후 객사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경찰서에 감금당한 유희철(劉熙哲) 등 세 사람을 석방하라는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군중들과 함께 경찰서를 계속 압박해서 구금자들을 풀려나게 하였다. 다시 군중들과 함께 시장으로 돌아와서는 시장에서 유진봉이 “조선은 현재는 독립할 정도가 되고 경성 기타에도 이 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이태왕 전하의 죽음은 독살이란 풍설이 있다. 독립의 기운이 익어가고 있으니 열렬한 운동을 해야 한다. 내일 정오까지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에 모여 만세를 부르자”는 연설을 듣고 시위대와 함께 오후 11시경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튿날인 3월 19일 오전 8시 일본 군경이 만세운동 참가자를 수색하던 중 붙잡혔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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