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玉南
玉南190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21년 목포 영흥학교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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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현 강진읍) 남포리(南浦里) 출신이다. 이명은 김옥남(金玉男)을 썼다. 판결문에 의하면 190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목포에 위치한 영흥학교(永興學校, 현 영흥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재학 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1년 11월 경 워싱턴회의(Washington Conference, 華盛頓會議)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신문기사 등을 통해 들었다. 워싱턴회의는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워싱턴에서 동아시아·태평양 일대의 이권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워싱턴회의가 열릴 때 만세시위를 일으켜 여론을 환기시키고 회의에 참석한 각국 위원들에게 알리면 독립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져갔다. 1921년 11월 14일 영흥학교 졸업생 양일석(梁一錫)이 학교로 찾아와 다음날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박종근(朴鍾根)과 함께 이 제안을 듣고 적극 찬성하였다. 이어 동료 김용문(金龍文)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찬동을 얻은 후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다. 곧바로 양일석·최철근(崔轍根)과 함께 기숙사 내에서 태극기 수 십 장을 만들었다. 다음 날 11월 15일 오전 10시경 제작한 태극기를 학교 운동장에 배포하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약 40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가담하여 목포 시내인 남교동(南橋洞)과 죽동(竹洞) 방면을 행진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았다.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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