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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환

金濟煥

1867. 10. 20 ~ 19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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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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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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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성산대강회 개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7년 10월 20일 태어났고, 1913년 당시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 이목정리(梨木亭里)에서 거주하였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문도(文道)이며 호는 소당(素堂)이다. 유생(儒生)으로 청주군 산외일면(山外一面) 비상리(飛上里)에 서당(書堂)을 설치하고 사서삼경(四書三經), 천자문(千字文) 등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비분강개하여 서당 생도들에게, “우리는 대한국 황제의 유신(遺臣)이므로 현 정부의 법률에 복종할 의무가 없으며, 또 일본 국민이 아니므로 현금의 민적부(民籍簿)에 성명을 기입 게재함은 불쾌하다. 그런데 너희들은 불행히도 이미 신고(申告)를 끝냈으므로 적당한 기회에 각자 성명을 민적부에서 삭제하도록 하라”고 제적(除籍)을 권유하였다. 또한 그와 같은 취지의 책을 써서 일반 생도에게 이를 송독(誦讀)하도록 하는 등 반일 사상을 고취하였다. 아우 김성환(金成煥)도 서당의 훈장으로 “오늘날 관리는 모두 난신적자(亂臣賊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병을 일으켜 그들을 박멸하고자 밤낮으로 오랫동안 고심하여 왔으나 아직도 그때가 오지 않았다. 그대들은 항상 이 뜻을 받들어 우리는 대한 국민의 의무를 망각하지 말 것”을 강론하였다. 이로 인해 아우 김성환과 함께 1912년 2월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조선형사령(朝鮮刑事令)에 따라 각각 금고 1월을 받았다. 옥중에 있으면서 단식 투쟁을 하였다. 이후에도 자신의 문인과 제자들에게 강회 등을 통해 불납세(不納稅)·불입적(不入籍)·불응역(不應役) 운동을 전개하였다. 소위 ‘기념일’에는 일본기를 달지 않았다. 이어 1913년 청원군(淸原郡)에서 성산대강회(聖山大講會)를 열고 일제에 항거하여 거의(擧義)할 것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 붙잡혀 태(笞) 40도(度)를 맞은 후 풀려났다. 이후 “내가 죽으면 큰 벼락불이 되어 너희 종류를 씨도 남기지 않겠다.”라는 글을 조선 총독에게 보내고 음식을 끊고 지내던 중 1916년 10월 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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