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履杰
杰1884. 7. 14 ~ 1950. 8.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이재명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평안남도 평양군(平壤郡) 용연면(龍淵面) 외삼리(外三里) 출신이다. 용연의 사립 융흥소학교(隆興小學校)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이재명(李在明)·김병현(金秉鉉) 등과 이완용(李完用)·이용구(李容九) 등 매국적 처단을 계획하였다. 이재명은 1908년 11월 일진회(一進會)가 ‘한일합방’을 주창하며 성명서를 공포하고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이 병합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에 그를 살해할 계획을 하였고, 이를 실행할 동지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11월 하순부터 평양에 가서 12월 상순까지 박태은(朴泰殷)의 집에서 김정익(金貞益)·이동수(李東秀)·전태선(全泰善)·이응삼(李應三) 등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가입을 권유하였다. 이때 김정익은 합방의 주창자인 일진회장 이용구를 처단하자는 의견을 내어 이완용·이용구 두 사람을 동시에 협력하여 처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이재명과 이동수·김병록(金丙錄) 등은 이완용 처단, 김정익과 조창호(趙昌鎬)는 이용구 처단을 담당하기로 협의하였다. 박태은은 오복원(吳復元)·이응삼과 함께 거사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의 임무를 담당하였고, 전태선은 거사에 사용할 권총을 빌려 경성으로 운반하는 책임을 담당하였다. 이때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진회장 이용구 등의 처단에 필요한 단총을 빌려오라는 의뢰를 받고, 친척인 이국림(李國林)에게 단총 한 자루를 빌려와 조창호를 통해 이재명에게 제공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재명은 12월 23일 오전 11시경 이완용이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명동 천주교회당에 가는 것을 탐지하고, 이동수와 같이 단총과 단도를 휴대하고 교회당 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이완용이 추도식을 끝마치고 인력거를 타고 되돌아갈 때에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단도를 꺼내어 이완용의 왼쪽 어깨 부위를 찔렀다. 그러나 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붙잡혔고, 이동수와 조창호는 도피하였다. 사건의 참여자들은 이때 붙잡혔다. 이재명을 제외한 이 사건의 연루자와 혐의자는 모두 25명으로, 연루자 13명 중 이학필과 조창호, 이동수는 도주 중이었으므로 붙잡힌 10명만이 1909년 5월 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결국 1910년 5월 18일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참여하였고, 의용단(義勇團)에도 가입하여 항일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