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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柱

永柱

1896. 9. 17 ~ 1930. 1.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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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구세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부산경찰서 폭탄사건(박재혁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96년 9월 17일 경상남도 동래부(東萊府) 동래군(東萊郡) 동평면(東平面) 좌천동(佐川洞)에서 태어났다. 좌천동의 개량서당 육영재(育英齋)와 그것의 개편에 의해 1909년 개교한 사립부산진보통학교에서 수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부산공립상업학교(후일 부산상업고등학교로 개명)에 들어가 수학하고 1915년 3월 제4회로 졸업하였다. 1915년 봄에 상업학교 동창생인 박재혁(朴載赫)·최천택(崔天澤) 등 16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밀결사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하였다. 구세단은 매월 한 차례씩 등사판으로 단보(團報)를 내고 자체 수양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밀양의 김원봉(金元鳳)도 단원으로 가입시켜 각지 선전을 맡겼다고 한다. 그러나 구세단 조직은 그 해 초가을 경찰에 탐지 발각되는 바람에 해산되고 말았다. 부산에서 잡화점을 경영 중이던 1920년 8월초에 중국 상하이(上海)의 의열단원인 친우 김병태(金餠泰)로부터 송금되어 온 100원을 받아 박재혁에게 건네주었다. 그 돈을 여비 삼아 상하이로 간 박재혁은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거사 밀명을 받고 되돌아와 9월 6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박재혁·최천택과 더불어 3인이 동래온천과 해운대(海雲臺)에서 은신 정양하며 거사 기회를 노렸다. 1920년 9월 14일 고서적 상인으로 변장한 박재혁이 부산경찰서로 들어가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 서장과 상담(商談)하는 척 회견하다 폭탄을 꺼내 던져 서장실을 대파하고 서장에게 부상을 입혔다. 투탄 직후, 경찰에 의해 최천택·오재영(吳哉泳) 등 5인과 함께 '연루자'로 지목되어 잡혀가 조사 받았다. 3주일 후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는데, 거사 계획에 직접 가담한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음에 그 해 10월 16일에 풀려났다. 1925년부터 오재영이 인수하여 경영하는 『조선일보』 부산지국 기자가 되어 수년간 활동하다 1930년 1월 15일 35세의 나이로 병사(病死)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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