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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致福

致福

1898 ~ 192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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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致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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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의부(正義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조악(造岳)경찰출장소 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출신지와 가족관계, 성장 과정은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자료에 의하면 1898년 생으로 추정된다. 또한 정의부(正義府) 의용군 소속 독립군으로 활동한 행적은 있으나 만주로 간 경위나 그 이전의 독립운동 사항도 알기 어렵다. 재만(在滿)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비롯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지린주민회(吉林住民會)·고본계(固本契)·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카룬자치회(卡倫自治會) 등 8개 단체가 통합해 성립되었다. 하얼빈(哈爾濱)-어무(額穆)-북간도(北間島)의 선을 이어, 그 이남 만주에 거주하는 이주 한인들을 관할하며 독립운동을 수행한 군정부(軍政府)의 기능을 갖는 단체였다. 따라서 조직도 관할 한인의 삶을 이끌 자치기구와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할 의용군 등 두 갈래로 구분되어 편성되었다. 류허현(柳河縣) 본부에 중앙 조직인 중앙행정위원회, 중앙의회, 사판소 등이 3권 분립에 입각해 구성되었다. 지청천(池靑天, 이명 이청천[(李靑天)])을 사령관으로 한 의용군 사령부도 설치되었다. 성립 초기 중앙행정위원장은 이탁(李沰)이었다. 관할 한인사회 각 지역에는 그 규모에 따라 총관(總管), 지방(地方), 구(區) 등의 지방 조직이 설치되어 중앙과 연결시켰다. 5개 중대 및 헌병대로 구성된 의용대도 관할 각 지역에 분산 배치되었다. 1927년경 정의부 의용군의 제5중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음)5월경 이진무(李振武)가 이끄는 결사대의 구성원이 되었다. 유격대장 이진무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단신이었으나 민첩하고 용맹성을 갖춘 인물이었다. 게다가 서간도 최초의 독립군단으로 1919년 4월 성립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한 이후 통의부를 거쳐 오며 수많은 유격 활동을 수행해 경험을 축적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함께 구성된 유격대원은 대장 이진무를 비롯 홍학순(洪學, 이명 홍학원[(洪學元)])·김성숙(金聖淑)·이원진(李元珍)·김봉수(金奉秀)·장기천(張基千) 등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들어온 7명의 유격대는 홍학순·김봉수·김성숙·장기천이 한 조가 되고 이진무를 비롯한 나머지가 한 조가 되어 2개조로 나뉘었다. 홍학순·김봉수 등 4명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방면으로 향하고, 이진무가 이끄는 한 조는 구성군(龜城郡)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1927년 7월 24일 구성군 관서면(館西面) 조악동(造岳洞)에 진입한 이진무 조는 그곳의 경찰출장소를 첫 번째 작전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세 명의 유격대원들은 기습적으로 출장소로 진입해 근무 중이던 일본인 순사 시게 타메요시(重爲好)를 단 한방의 총격으로 처단하였다. 전리품을 챙겨 서둘러 출장소를 나온 유격대원들은 군 경계를 넘어 정주군(定州郡)으로 이동하였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였으니 일제의 수색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감안하였기 때문이었다. 며칠 간 일제 경찰의 움직임을 관망한 뒤, 같은 해 8월 18일 정주군 옥천면(玉川面) 월옥동(月玉洞)에 있는 여관에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 가, 20여 명의 투숙객으로부터 410원의 현금과 패물을 군자금으로 모금하였다. 이어 정주군내의 이현면(梨峴面)·천마면(天摩面) 등을 돌아다니며 부호들의 집에 기습적으로 들어 가 수백 원의 군자금을 모금해 본부로 돌아왔다. 의주군으로 진입한 다른 한 조도 1927년 7월 20일부터 독립군의 활동을 일본인 못지않게 방해한 친일파들을 척결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히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8월 18일에는 의주읍내로 들어가 일제가 만든 금융기관인 용만금융조합(龍灣金融組合)을 기습 공격하여 군자금 980원을 거둬들였다. 본부로 귀대한지 약 2달 후 또 다시 유격대에 합류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이번에는 군자금 모금이 목적이었기에 단 4명으로 구성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유격대였다. 1927년 10월 19일 구성군으로 진입해 부호들의 집을 찾기 위해 이동하던 중 사기면(沙器面) 왕당동(旺當洞)에서 일제의 평북경찰부 소속 경찰대 40여 명과 마주치게 되었다. 일본인 순사가 살해당하고, 금융조합이 공격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일제 경찰대는 대대적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중과부적의 상황이었지만 유격대는 일제 경찰대와 약 30분간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교전 중 세 명의 동료 대원들이 빠져 나가도록 엄호하다 일경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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