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致伯
致伯1890 ~ 1920.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군단(義軍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1890년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에서 태어났다. 자세한 가족관계와 도만(渡滿) 경위는 알기 어려우나 북간도의 독립군단인 의군단(義軍團)의 중대장 김덕산(金德山)이 삼촌이다. 1919년 만주에서 무장투쟁에 나섰다가 적에게 희생되었다. 1920년 2월 의군단의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또는 독립의군단도독부(獨立義軍團都督府)로도 불렸던 의군단은 1919년 만세운동 후 연해주 추풍(秋風)에서 성립되었다. 간도관리사를 지낸 이범윤(李範允)이 총재였으며, 성립 후 곧 본부를 북간도 옌지현(延吉縣) 명월구(明月溝)로 옮겼다. 총재 밑에 사령부·재무부·검사부 등의 부서와 대한의군전위대(大韓義軍前衛隊)와 대한의군산포대(大韓義軍山砲隊)라는 두 개의 전투부대를 편성하였다. 이후 두 개의 전투부대는 편제된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통합된 후 소대장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소대장이 된 후, 약 50명의 부하 독립군을 이끌고 본부가 있는 명월구를 근거지로 항일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의군단을 비롯해 만세운동 후 성립된 여러 독립군단은 소속 독립군을 끊임없이 국내로 진입시켜 침략자 일제의 기관을 파괴하고 그 수뇌들을 처단토록 하였다. 독립군들의 이 같은 무장활동에 큰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 명의 대병력을 서·북간도를 향해 침입시켰다. 서·북간도에 구축된 독립군기지를 비롯하여 독립군과 그 지원세력인 한인사회를 초토화시킬 목적이었던 것이다. 일본군 대군이 침입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간파한 독립군들은 일시적 피전책(避戰策)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독립군단 간에 사전 연락을 취하며 백두산록 서쪽을 향하였다. 의군단의 경우, 같은 명월구에 근거지를 가진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연합해 이동하도록 합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대별로 흩어졌던 병력이 합세하여 중대장 김덕산과 김진규(金鎭奎) 등이 지휘하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 김덕산 중대장은 소대장급 간부와 얼마의 독립군들에게 행군에 참여하지 말고 남아 한인마을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대한독립군과 합세해 행군한 의군단 병력은 그 해 10월 21일부터 전개된 청산리전투의 주역 중 하나가 되었다. 명령에 의해 같은 소대장 이종흡(李鍾翕)과 함께 가족이 거주하는 한인마을인 옌지현 지인사(志仁社) 일량구(一兩溝) 의림평(依林坪)으로 갔다. 일반인 복장을 입고 남자들을 모아 마을의 경계선을 갖추고, 일본군의 공격이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1920년 10월 중하순경, 마을의 사정을 잘 아는 한인 친일파를 앞세운 일제의 19사단 15연대 병력이 덮쳐왔다. 친일파들에 의해 이력이 밝혀져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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