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민
金致敏188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1919년 12월 31일 밀정 정현조(鄭鉉祚)의 가택 소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4년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신창면(新倉面) 숭덕리(崇德里)에서 태어났다.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은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국경을 넘어 북만주로 갔다. 그리고 왕칭현(汪淸縣)에 본부를 둔 광복단(光復團)의 단원이 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성립된 광복단은 이범윤(李範允)이 단장으로 추대되었으나, 활동은 김성극(金星極)·김성륜(金聖倫) 등이 주도하였다. 광복단은 왕칭현 본부 외에 안투현(安圖縣)에 한 개, 창바이현(長白縣)에 3개의 분단(分團)을 설치하였다. 한국과의 국경에 근접하거나 접해 있는 이들 지역에 설치된 분단의 단원들은 수시로 유격대를 편성해 국내진입전을 펼쳤다. 광복단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1919년 말 평남지역으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순천·성천군(成川郡) 등지를 무대로 일제의 주재소를 습격 소각하고, 침략 세력의 최말단으로 수시로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순사를 처단하였다. 1919년 12월 31일에는 성천군 삼덕면(三德面) 문원리(文源里)에 사는 밀정 정현조(鄭鉉祚)의 집을 소각하였다. 1920년 1월에는 성천군에 소재한 아파(丫波) 금융조합 이사인 일본인 나가시게 히데키치(永重英吉)를 총살하였다. 조합이란 이름으로 위장해 식민지 한국의 말단 행정 단위에 설치된 금융조합은 형편이 급박한 서민들에게 돈을 대출해 주고 높은 이자를 받아내는 허가받은 악질 고리대금업자였다. 이 같은 활동을 벌인 후 만주로 돌아가 항일활동을 벌이다 세월이 흐른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1934년 1월 함께 활동하였던 동지 한국원(韓國源)이 만주의 푸순(撫順)에서 붙잡혔다. 이후 그 해 2월까지 우승창(禹承昌)·안희범(安希範) 등 동지들과 순차적으로 붙잡혀어 1936년 4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