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봉
金天鳳1890. 8. 1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 · 참의부(參議府)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90년 8월 18일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동면(東面) 화신동(花薪洞)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의 구장(區長)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을 때인 1920년 (음)7월, 재만 독립군단(獨立軍團)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파견원 문시극(文時克)과 맹씨(孟氏) 성을 가진 두 사람의 권유로 단원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음력 8월 지단(支團) 총무장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성립된 대한독립단은 만주에 본부와 만주지단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국내에도 특파원을 파견해 함경·황해·평안도 등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총무장으로 활동하던 중 일제의 추적을 피해 1920년 음력 11월 압록강을 넘어 지안현(輯安縣) 유수림자(楡樹林子)에 사는 지인의 집에 은신하였다. 얼마 후 대한독립단 만주지단 중의 하나인 집동(輯東)지단의 서기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지안현에 도착하여 곧바로 독립단원으로 활동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시기 일제에 의한 ‘경신참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세운동 후 성립된 여러 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의 활동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에 달하는 일본군을 서북간도지역으로 침입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4월까지 6개월이 넘게 이주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를 초토화시켰다. 따라서 대한독립단의 독립군들도 일시적으로 조국 광복을 위한 무장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일본군이 철수하자 서간도의 민족운동지도자들은 통합운동을 벌여 1922년 8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성립시켰다. 대한독립단의 일부도 대한통의부에 가입했지만, 이 단체에는 소속되지 않았다. 1924년 초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 1·2·3·5 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가 이탈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결성했다. 이에 1924년 12월 참의부의 검무감(檢務監)에 임명되었다. 검무감이란 독립군 및 관할 지역 이주 한인의 부당 행위를 적발해 처벌하는 사법적 업무를 행하는 직책이었다. 이어 1925년 음력 12월에는 참의부 관할 지방행정구역인 지산(輯山)지방의 행정위원에 임명되었다. 지산지방은 지안현내 일부를 구획한 지역이었다. 지방행정위원은 관할지역내 한인들에게 의무금을 징수하거나 한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본부에서 하달된 행정사항을 지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참의부 지방조직의 일원으로 이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26년 2월 24일 중국 보갑국(保甲局) 관리에게 붙잡혔다. 일제는 이미 1925년 6월 11일 중국 측과 미쓰야협정(三矢協定)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라 중국 측에 붙잡힌 후 강계경찰서(江界警察署)로 인계되었다. 이후 위원경찰서(渭原警察署)를 거쳐 1926년 4월 17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예심을 거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6년 10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26년 12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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