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天斗
天斗1894 ~ 1920.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출신지와 생년은 알 수 없으나, 자료에 따르면 평안북도 자성(慈城) 출신으로 1894년생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명은 김천두(金千斗)이다. 고향에서 생계를 위해 헌병보조원 일을 했으나, 만세운동 후 재만(在滿) 독립군단(獨立軍團)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으로 가입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만세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한 의병계열의 인사들이 성립시킨 독립군단이었다. 1919년 4월 15일 서간도(西間島)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 등이 주도해 3일간의 창립총회를 거친 후 성립되었다. 성립 초기 대한독립단은 류허현 삼원포에 박장호를 도총재로 한 중앙본부를 조직하고, 콴뎬(寬甸)·지안(輯安)·환러(桓仁)·싱징현(興京縣) 등에 만주 지단(支團)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특파원을 파견하여 함경도와 황해도 등에는 국내 지단을 설치하였다. 이 같은 조직체계를 갖추고 만주와 국내에서 대대적인 단원모집을 실시하였다. 이때 대한독립단의 단원이 되어 연해주로 보내져 군사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1920년 초 린장현(臨江縣) 팔도강(八道江)에 31명의 동지와 함께 특파단을 구성해 파견되었다. 안병훈(安秉勳)을 단장으로 한 특파단의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이 특파단은 본부의 명령에 따라 증감되다가 음력 3월 초에는 18명만이 팔도강에 남아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독립단뿐만 아니라 만세운동 후 서북간도지역에 성립된 많은 독립군단들은 수시로 유격대를 구성해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독립군 유격대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제는 중국 측에 한국독립군과 배일한인(排日韓人)을 탄압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또한 1920년 5월, 주(駐)펑텐(奉天) 일본총영사는 동삼성(東三省) 순열사(巡閱使)인 장쭤린(張作霖)을 압박해서 중일합동수색대를 편성하여 한국독립군을 수색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협약 후 장쭤린은 이주선인취체보호(移住鮮人取締保護)에 관한 성장(省長)과 전성경무처장(全省警務處長) 명의의 훈령(訓令)을 발표하였다. 이 협약을 근거로 펑텐성 경찰고문인 사카모토(坂本)는 1920년 7월 중강진(中江鎭) 헌병대와 경찰대의 병력을 차출하여 그들을 이끌고 린장현(臨江縣) 지사(知事)를 압박해 중국 경찰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고 린장현 내 독립군 수색작업을 펼쳤다. 이 중일 합동수색대의 공격을 받고 특파단도 근거지인 팔도강을 떠나 삼삼오오 흩어져 피신하였다. 그 과정에서 린장현 두도구(頭道溝)에서 매복해 있던 중일 수색대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