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훈
金昌勳187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훈춘선인기독교우회
- · 훈춘한민회
- · 신대한청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72년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에서 출생하였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관계와 만주로 망명한 경위는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1910~1920년대 북간도(北間島) 훈춘현(琿春縣)에 거주할 시기 독신으로 기독교 신자였으며, 훈춘선인기독교우회(琿春鮮人基督敎友會)·훈춘한민회(琿春韓民會)·신대한청년회(新大韓靑年會) 등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부터 훈춘현 금당촌(金塘村)에 사숙(私塾)을 열어 이주한인 자제들을 대상으로 민족교육과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고취시켰다. 교육사업을 실시하면서도 이동휘(李東輝)·황병길(黃炳吉)·백삼규(白三奎) 등과 연계하며 실질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5년부터는 금당촌 사숙에만 머무르지 않고, 북간도 각지에 설립된 민족학교를 순회하며 한인 2세들에게 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는 북간도 전역을 수시로 왕래하며 민족학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황병길과 협의하여 벌인 사업이었다. 1916년에는 훈춘선인기독교우회 교육과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1913년에 훈춘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 것으로 외형적으로는 기독교 전파와 교육개발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일사상 고취를 위해 활동한 단체였다. 1916년 당시 회원은 약 2,000명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 해 4월 동지 김의진(金義振)과 함께 왕칭현(汪淸縣) 태평구(太平溝)로 갔다. 한인 청년들을 모집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독립군단(獨立軍團)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노력에 의해 1919년 4월 중순 훈춘현에는 훈춘한민회가 성립되었다. 이 단체는 훈춘선인기독교우회가 기반이 된 단체로 3·1운동으로 조국독립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된 한인 청년들을 영입시켜 만든 것이었다. 초대 회장은 이명순(李明淳), 부회장은 장학년(張學年), 사령관은 최덕준(崔德俊)이었고, 그 아래 군무·경호·재무·통신·교육 등의 부서가 편성되었다. 독립군 수 약 250명에, 3정의 기관총과 300정의 군총을 보유하고 항일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6월부터 훈춘한민회의 교육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부터는 신대한청년회 비밀사찰(秘密査察)에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신대한청년회는 1920년 1월, 훈춘현에 거주하는 민족운동가 350여 명이 뜻을 모아 만든 독립운동 단체였다. 회장은 이경호(李京鎬), 부회장은 최덕재(崔德在)였으며, 민족정신이 투철한 15세 이상의 한인은 누구든 가입할 수 있었다. 비밀사찰의 업무는 중국 관청 또는 일제 군경대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평의부(評議部)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훈춘현을 비롯한 북간도를 무대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으나, 1920년대 중반 이후 행적에 대한 자료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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