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金昌鉉1898 ~ 1920. 12.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관련 사건
- · 평안북도 삭주군 남서면 명상동 일제 경찰대와 교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평안북도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성장 과정과 만주로 망명하게 된 경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려우나, 1920년부터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의병 계열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19년 4월 15일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성립된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가 지휘하는 유하현의 중앙본부 이외 서간도의 관전(寬甸)·환인(桓仁)·흥경(興京)·집안현(輯安縣) 등에 만주 지단(支團)을, 국내의 함경·황해도 지역에 국내 지단을 설치해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단 관전현 지단의 단원이 되었다. 1920년 11월 23일 8명으로 구성된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으로 진입하였다. 유격대는 용천군에서 약 8일간 머무르며 군자금모집 활동을 펼쳤다. 용천군에서 계획했던 일이 어느 정도 끝나자 6명의 대원은 철산군(鐵山郡)으로 이동하고, 채득경(蔡得京)과 의주를 거쳐 삭주군(朔州郡)으로 들어갔다. 콜트식 자동 권총과 120여 발의 탄약으로 무장한 두 사람의 목표는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하는 친일세력과 일제 관공리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우선 광산으로 잠입해 작업복을 탈취해 광부로 변장하였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던 중 같은 해 12월 4일 밤 11시, 삭주군 남서면 명상동에서 삭주경찰대와 마주쳤다. 광부복을 입어 변장했으나 허리에 찬 100발이 넘는 탄약 전대를 수상히 여긴 경찰대가 검문을 시도하였다. 이에 검문을 거부하며 권총을 발사해 경찰대와 교전이 일어났다. 단 두 명이 6명의 일경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으로 결국 채득경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사망 당시 두 사람은 권총과 탄약 이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에 협조하라는 「격고재내동포」라는 제목의 격문 283매, 군자금영수증 50매 및 용천에서 모집한 군자금 79원 45전을 소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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