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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禹燮

禹燮

1891 ~ 19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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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禹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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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출신지는 미상이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사망 당시 나이가 30세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1891년 전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간도에서는 일본군들에 의해 한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을 ‘경신참변(간도참변)’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의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1918년 일본은 러시아혁명을 막기 위해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연해주에서 시베리아까지 일본 세력권에 편입시키고 만주와 몽고를 포함한 세력권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에서는 한국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북간도에 있었던 북로군정서·대한독립군·군무도독부·공의단(共義團)·신민단 등 많은 독립군 단체들은 조직을 강화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국내 진격작전을 진행하였다. 일본은 함경북도 나남(羅南)에 주둔하고 있던 19사단에게 독립군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삼둔자와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일본은 만주 동삼성 당국과 교섭하여 한국독립군을 와해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 관동부사령부, 시베리아 파견군, 봉천총영사관 등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독립군을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1920년 8월, 일본은 만주에 있던 독립군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출병할 구실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20년 10월, 중국 마적(馬賊)이 훈춘현(琿春縣)에 있던 일본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고 불태우게 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것을 ‘훈춘사건(琿春事件)’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 사건을 마적단, 한국독립군,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군이 합작하여 저지른 사건이라고 변명하였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본은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으며, 10월 20일부터 대대적인 독립군 소탕작전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의 작전은 매우 잔인하였다. 이소바야시(磯林) 소장, 히가시(東正彦) 소장, 기무라(木村) 대좌가 지휘한던 일본군 부대는 가는 곳마다 한인 마을을 불태웠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들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외출을 하지 못하였으며, “일본군이 지나가는 곳은 주검과 불바다가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르면 피살된 자만 3,693명에 이르렀다. 부상자, 이재민 등의 숫자를 합치면 한인들이 피해를 입은 정도는 숫자로 환산하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일본이 일으켰던 대규모 학살인 ‘경신참변’에 의해 희생되었다. 일본군은 극비문서로 1921년 2월 25일 「간도사건선지인사상자조사(間島事件鮮支人死傷者調査)」 라는 표를 작성하였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며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일본군에게 붙잡혔을 때 거주지는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숭례향(崇禮鄕) 도목구(倒木溝)였다. 가입하고 활동하였던 독립운동단체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0년 11월 11일, 보병 제74연대가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이승범(李承範, 농업, 25세)을 사살할 때 같이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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