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煥
用煥1892. 8. 1 ~ 1919. 8.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독립대동단
- · 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의친왕(義親王) 망명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2년 8월 1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림(白林). 조선민족대동단(이하 대동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3월말 서울에 있던 전협(全協)의 집에서 발족하였다. 대동단은 일제 통치에서 벗어난 독립국을 만들 것,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사회주의를 실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대동단의 단원은 귀족, 관리, 유학자, 종교인, 상공인, 청년, 학생, 부녀자 등 다양한 층에 걸쳐 있었다. 조직형태는 비밀유지를 위해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부진으로는 총재 김가진(金嘉鎭), 군자금 등 재정 전협, 선전활동과 대외활동 최익환(崔益煥) 등이 있었다. 김찬규(金燦奎)·박영효(朴泳孝)·민영달(閔泳達) 등도 참여하였다. 대동단은 설립 이후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경기·충청·전라·경상·평안·함경도 등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에도 지부를 설치하였다. 기관지 역할을 하는 신문으로 『대동신보(大同新報)』를 발간하였으며, 지하문서들도 배포하였다. 대동단의 활동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의친왕 망명 사건’이다. 대동단의 단원이 된 후 의친왕 망명을 위한 자금과 대동단의 활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광희문 안에 살며 직물업에 종사하던 중에 1918년 (음)11월 초순, 의친왕 이강(李堈)을 상하이(上海)로 망명시키기 위해 전협이 자금조달을 요구하자 340원을 마련해주었다. 같은 달 중순경에는 전협이 펑톈(奉天)으로 이주할 때 680원을 제공하였으며, 의친왕을 상하이로 망명시키기 위한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전협을 대신해서 거금을 한성은행에 맡겨두었다. 1919년 중국 항저우(杭州)에 있던 신규식으로부터 대동단의 외교사무를 담당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콜레라에 감염되어 항저우 절강병원(浙江病院)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이 악화되어 1919년 8월 18일 사망하였다. 2003년 12월 국가보훈처는 절강병원 뒷산인 고탕산에서 묘소를 찾아 국내로 유해를 봉환하였으며, 2004년 1월 7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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