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基
金基1901. 10. 30 ~ 1983. 11.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1년 10월 30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심천면(深川面) 오봉동(梧峯洞)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용득(金龍得)으로, 옥고를 치른 후 개명하였다고 한다. 1919년 11월 20일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였다. 대한의군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용복(金龍福)의 동생이다. 1922년 1월 무렵 펑톈성(奉天省) 싱징현(興京縣)에서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에 참가하여, 제1중대 제1소대에 소속되었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복벽주의계 인물들이 이탈해 조직한 대한의군부는 대부분 의병 출신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지향하였다. 1923년 8월 5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광평면(廣平面) 청성진(淸城鎭) 소재 일제 관공서를 공격하기 위해, 대원 34명과 함께 콴뎬현(寬甸縣)을 출발하였다. 8월 6일 오후 12시 무렵 국내로 진입하여, 의주군 가산면(加山面)을 거쳐 청성진으로 이동하였다. 대원을 셋으로 나누어, 제1반은 10명으로 소대장 이경일(李京日)이 지휘하여 경찰관주재소를, 제2반은 9명으로 정교(正校) 김상률(金尙律)이 지휘하여 광평면사무소를, 제3반은 7명으로 부교(副校) 장기후(張基厚)가 지휘하여 우편국을 공격키로 하였다. 이때 제2반에 소속되어 1923년 8월 8일 오전 4시 50분 무렵 광평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한인 순사 최인섭(崔仁爕)과 일본인 순사 2명을 처단하고 무기를 확보하고 관공서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각종 서류를 불태웠다. 이에 일제는 평안북도경찰부 소속 60명을 비롯하여 신의주세관과 의주경찰서 소속 경찰 병력을 파견하였다. 일제 경찰과 수차례 전투에서 대원 6명이 전사하였고, 무기와 모집한 독립운동자금을 압수당하였다. 1924년 7월 12일 오후 4시 평북 신의주부(新義州府) 초음정(初音町) 52번지 황리헌(黃利憲)의 집에서 신의주경찰서 순사들에게 붙잡혀, 주윤식(朱允植)·김용복·정국민(鄭國敏)·황리헌과 함께 신의주지방법원 예심에 넘겨졌다. 1924년 11월 28일 오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었고, 12월 3일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다시 1925년 2월 21일 오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받았고, 5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