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창원

金昌源

1911. 3. 6 ~ 1945. 9. 1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창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연천(漣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연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칠성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1년 3월 6일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전곡면(全谷面) 전곡리(全谷理)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부친 김봉배(金鳳培) 밑에서 도자기 제조업과 목재업을 하였다. 창씨명은 우전창원(宇田昌源)이다. 1939년부터 1941년 사이 김준연(金俊淵) 등과 국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결의한 사실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금족령(禁足令)’을 받았다. 1942년 4월 하순 경성부 종로 2가 한기도의원(韓箕道醫院)에서 금본태안(金本泰安)을 만나 ‘조선의 독립 및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이후에도 조선 독립을 실행하기 위한 비밀결사 조직을 계획하였다. 1942년 5월 상순에는 금본태안과 조선의 독립 및 공산화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칠성단(七星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동지 규합과 운동 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1942년 7월에는 조속한 광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군수공장 파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함경북도 성진(城津)에 있는 성진 고주파 공장 파괴를 계획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44년 10월 1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45년 2월 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이후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고, 9월 17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2004년 11월 5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