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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金晋熙

1907. 5. 1 ~ 197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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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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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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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제주도 함덕 적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7년 5월 1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신좌면(新左面,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함덕 적비 사건’ 당시 함덕리에서 농사를 지었다. 1931년 1월 19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사망한 함덕리 출신 독립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유해가 도착하자,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고종건(高宗虔)·양구문(梁龜文)·송건호(宋健浩) 등과 함께 추도식을 준비하였다. 1월 21일 한윤섭(韓允燮) 집에 모여 “추도(追悼), 적혁(赤革) 한영섭의 영(靈)”이라고 쓴 깃발 8개, “불평등한 사회를 파괴하고 무산계급(無産階級)의 자유를 건설하려고 했던 당신은 죽었으나 당신의 주의(主義) 정신은 동지인 우리들이 계속 이어가고 분투할 것이니 안심하시오”라고 쓴 깃발 10개, 기타 애도하는 뜻의 깃발 40개를 만들었다. 다음날 이 깃발들을 앞세우고 한영섭의 조부인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치러진 장례식에 참석하고, 묘지에 매장할 때 조문객들에게 “민중의 깃발, 적기는 전사의 시체를 둘러싸고, 높이 세워라 적기를, 그 그림자를 죽음에 맹세하자.”라는 ‘적기가(赤旗歌)’의 일부를 합창하게 하고, 한영섭을 추모하는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 동지들과 30전(銓) 또는 50전씩을 갹출하여, 3월 17일 함덕리 주민 공동 급수장 부근에 “동지 적광(赤光) 한영섭 기념”, “차디찬 백색 아래 억압된 무리들아 크게 놈들과 울며 싸우며 피를 뿌린 동지였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한영섭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확대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 경찰은 추도식에 사용한 깃발에 쓰인 문구, 장례식에서 마을 주민들과 합창한 혁명가의 내용, 추모비에 새긴 문구 등이 ‘정치적이고 불온하다’는 이유를 들어 주도 청년들을 체포하고, 깃발과 추모비 등을 압수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31년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31년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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