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澤
鍾澤1915. 12. 5 ~ 1942. 5.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목포 출판노동조합 준비위원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조선공산당 전남재건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915년 12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임자면(荏子面, 현 신안군 소재) 대기리(大機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동진(金東珍), 이달성(李達城)이다. 1929년 고향의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10월부터 목포에 있는 목포신보사(木浦新報社)에 문선공(文選工)으로 일하였다. 1932년 3월 보성(寶城) 출신 사회주의자 김백동(金百東)에게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였다. 이후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정종섭(鄭宗燮)의 지도를 받았다. 1933년 4월 30일 정종섭을 통해 이홍연(李烘衍)을 소개받고 사회주의를 통한 신사회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홍연은 1931년 11월 경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者協議會) 간부 김상혁(金相爀)으로부터 사회주의 활동에 대한 권고를 받아 황해도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나, 평양 경찰에 발각되어 고향인 전라남도 나주(羅州)로 송환된 상태였다. 이홍연은 한국 노동자·농민을 위한 혁명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이를 위해 목포신보사 내의 직공들에게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심어줄 것을 지시하였다. 1933년 6월 20일 자택에서 이홍연, 김홍근(金洪根)과 함께 목포 지역 인쇄 직공들을 지도할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인쇄노동조합운동 준비기관인 목포 출판노동조합 준비위원회(木浦出版勞動組合準備委員會)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도중 1934년 11월경 전라남도뿐 아니라 경상남도, 경상북도에 걸친 일본 경찰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탄압으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후 재건을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이 모색되었는데, 국내 연결자인 김형선(金炯善)이 먼저 인천에서 검거되었고, 그와 연계하여 활동하던 좌행옥(左行玉), 이홍연의 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년이 넘는 구금 기간을 거쳐 1937년 5월 26일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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