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국
金俊國1879. 3. 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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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79년 3월 2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서화면(瑞和面) 죽본리(竹本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용강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용강군의 만세시위는 3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서울과 평양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다음 날인 3월 2일에 용강면(龍岡面)과 지운면(池雲面) 진지동(眞池洞)을 시작으로, 장날을 이용하여 기독교회나 천도교구가 있거나 기독교인이나 천도교인이 많은 마을 곳곳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3일에는 진지동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이어졌는데, 이 날 평양에 가서 독립선언서 7장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면서 진지동에서 6장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1장을 갖고 와서 신흥학교(新興學校)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때마침 3월 4일에는 서화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죽본리 마을 사람들이 만세시위를 일으켰고, 석치리(石峙里)에 위치한 신흥학교에서도 김대엽(金大燁)과 김대혁(金大赫)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교사와 학생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각각 죽본리와 석치리를 돌면서 행진하였다. 자복리(自福里)에 위치한 당치시장(堂峙市場)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5일에 강예순(姜禮舜)을 비롯한 여러 명에게 만세시위를 권하였다. 강예순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손명학(孫明學)·장치남(張治南)·한희룡(韓羲龍) 등은 죽본리에 거주하는 장병삼(張炳三)에게 연락하여 다음날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6일 신흥학교 학생 30여 명이 김두원(金斗源)·김홍세(金弘世)·장병삼의 지휘 하에 김치선(金致善)이 인솔한 서당 학생 15명과 합류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자복리로 몰려가서 순사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른 뒤 주재소 문과 처마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서화면 일대 만세시위로 일제가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7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만국평화회의가 제기한 인도정의와 생존존영(生存尊榮)의 민족자결주의와 조선 독립을 선언한 조선민족대표 33인으로부터 나온 선언서를 소지하고 나누어주었다는 이유로 징벌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취지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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