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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金鍾學

1876. 8.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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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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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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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6년 8월 24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단월면(丹月面) 부안리(富安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본적지에 거주하며 천도교도로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3일 경기 양평군 청운면(靑雲面) 용두리(龍頭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확산되자,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하고 같은 천도교인으로 단월면 덕수리(德水里)에 살고 있는 신재원(申在元), 양동면(楊東面) 쌍학리(双鶴里)의 정경시(鄭慶時), 청운면(靑雲面) 갈운리(葛雲里)에 거주하는 민주혁(閔周爀) 등과 청운면 여물리(余勿里)의 다리 아래에서 만세시위 준비를 하였다. 신재원이 미리 사둔 목면에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 3개를 만들었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3시 40분경 민주혁과 깃발을 흔들면서 용두리 시장으로 가서, 150여 명의 시위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청운면 용두리 헌병주재소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는 총 13명이 붙잡혔고 시위는 강제 해산 당하였다. 이 일로 1919년 4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우리들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라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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