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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金鍾泰

1885. 1. 18 ~ 1931. 9. 1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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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5년 1월 18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산리(梧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 당시 본적지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현재 행정구역은 오수면)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김영필(金永弼) 등은 기독교와 천도교에 관계된 인물로 1919년 3월 23일 오수장날을 이용해 독립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의 뜻에 찬동하여 3월 23일 아침부터 둔남면 대명리(大明里) 마을 어귀에 있는 김찬서(金贊西)의 주막 앞에서 행인을 상대로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한 다음, 오후 2시 장터에 모인 8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주도자인 이기송과 김영필 등이 일본 경찰에 붙잡히자, 시위 군중과 함께 오수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이기송과 김영필 등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위협을 느낀 일본인 순사는 이기송을 석방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다시 장터로 나아가 만세 시위에 나섰고, 일본인 노점상을 부수고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는 돌을 던져 창문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이날 저녁 남원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의 급보를 받고 출동한 일본군의 무차별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5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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