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暢
鍾暢1879. 5. 8 ~ 1950. 3. 18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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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1) 1879년 5월 8일에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현재 오수면) 둔덕리(屯德里)에 살고 있었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23일 둔남면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둔남면에서는 1919년 3월 10일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뒤 산발적으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후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이 장날인 3월 23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 장터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이기송이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이 이기송을 끌고가자,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오수경찰관주재소로 가서 이기송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일본인 순사 무라이(村井邑次)가 이기송을 석방하도록 하였다. 이후 시위 군중과 함께 장터를 행진하였고, 2천여 명에 이른 시위 군중은 시장 안의 일본인 상점을 부수고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 돌을 던져 창문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이날 저녁 남원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의 급보를 받고 지원 출동한 일본군의 무차별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요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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