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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金鍾奭

1899. 9. 25 ~ 1937.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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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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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연백(延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연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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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연백군 연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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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9년 9월 25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봉북면(鳳北面) 용남리(龍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1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延安面)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고종 장례식에 다녀온 주변 인물과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33인의 독립선언서 발표와 만세 시위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내용도 파악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4일 연백군 봉북면 진동리(院東里)에 거주하는 김덕배(金德培)와 만나 3월 15일 연안면 읍내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협의하였다. 3월 15일 봉북면 용남리 주민 약 10명을 이끌고 가다가 김덕배가 함께 데리고 온 진동리 주민 약 15명과 합류하여 연안면 읍내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봉북면 광동리(光東里) 주민들도 함께 합류하였다. 오후 2시경 연안면 동문 밖에 도착한 약 30명의 시위대는 떡과 술로 허기를 채운 후 읍내로 진입하였다. 김덕배와 함게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면서 ‘조선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따르던 시위대가 함께 외쳤다. 시위대와 함께 읍내를 돌아다니던 중 연백 헌병분대 헌병에게 해산되었다. 1919년 3월 21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1919년 4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상고 취지에 “프랑스 파리의 평화회의에서 타국의 속국인 여러 나라 가운데 인구 500만 이상과 역사상 국기를 지니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독립권을 부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손병희 이하 32인의 발표 및 만민의 독립만세 소식에 조선은 이미 독립된 듯했고, 어느 나라 국민이라 해도 자기 나라가 독립되었다는데 만세를 부르지 않을 자가 과연 있겠는가”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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