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錫
鍾錫1874. 10. 12 ~ 1936. 3.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부여군 부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74년 10월 12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신곡리(新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46세로 부여군(扶餘郡) 내산면(內山面) 지티리(芝峙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부여는 논산(論山)과 함께 충남에서 천도교세가 널리 퍼져 천도교도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이 천도교에 입문하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바로 다음날인 3월 2일 부여에는 논산에 이어 충남에서 두 번째로 천도교의 교구 조직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고, 이때 부여 교구 천도교도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각지로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3월 2일 오후 6시 무렵 전라북도 익산(益山)의 함열(咸悅) 천도교구에서 파견된 민영순(閔泳淳)이 40매씩 묶인 독립선언문 두 묶음을 김태호(金泰昊)와 이백순(李伯純)이 주재하고 있던 논산의 천도교구로 찾아가 전달하였다. 이 문서는 충남에 처음으로 배포된 독립선언문이다. 민영순은 해당 내용이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뜻과 일치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 다음, 김태호와 이백순에게 두 묶음 중 한 묶음을 충남의 주요 교구 중 하나였던 부여 교구에 전달할 것을 당부하고, 나머지 한 묶음은 논산 교구의 각 지역에 배포할 것을 부탁하였다. 김태호와 이백순은 즉시 민영순의 의뢰를 받아 행동에 나섰다. 논산 교구의 각 지역에 배포하는 것은 이백순이 담당하고, 김태호는 수령한 40매의 독립선언문 한 묶음을 가지고 곧장 부여로 출발해 오후 9시 무렵 부여의 천도교 교구실에 도착하였다. 당시 천도교인들과 함께 교구실에 있다가 김태호로부터 독립선언문 40매 한 묶음을 직접 수령하였다. 김태호는 민영순과 마찬가지로 독립선언문에 담긴 내용은 교주 손병희가 동의하여 각 교구로 발송한 것이니, 비밀리에 부여의 각 지역에 배포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황우경(黃宇京)·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 등 교구실에 함께 있던 교도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읽고, 그 내용의 중대성과 교주 손병희의 강력한 뜻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전날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들과 함께 그 날 밤 곧바로 부여의 각 지역으로 독립선언문의 배포에 나섰다. 천도교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부여에서는 3월 6일부터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이후 황우경과 박성요는 충화면(忠化面)의 박용화(朴容和)를 중심으로 황금채(黃金彩)·문재동(文在東), (載東)·정판동(鄭判同)·최용철(崔容澈) 등의 천도교도들과 함께 3월 6일 임천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와 같은 독립선언문의 배포 활동이 결국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독립선언문의 배포에 관련된 천도교도들과 임천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용화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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