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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金鍾甲

1894. 5. 8 ~ 193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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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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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扶餘)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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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논산군 강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4년 5월 8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세도면(世道面) 청포리(菁浦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4세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김진호(金振浩)이다. 1919년 3월 10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의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하였고, 시위에도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논산군 강경면과 인접한 부여군 세도면에서는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인 엄창섭(嚴昌燮)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엄창섭은 1919년 3월 5일 무렵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의 학생인 강금옥(姜今玉)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세화면 일대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을 규합하여 논산군 강경면 읍내 장날인 3월 10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시위 전날인 3월 9일 밤 엄창섭으로부터 호출을 받아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의 제작 요청을 받고, 창영학교에서 추성배(秋聖培)와 함께 다음 날 아침까지 약 200개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무렵 강경의 옥녀봉에 모인 엄창섭 등은 ‘독립 만세’를 외친 다음 장터로 내려와 태극기를 배포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때 시위 대열에 참여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은 재향군인 약 40명을 동원하여 만세운동 주도 인물 14명을 체포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어 소방조까지 동원하여 51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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